생산성이 아니라 피로도로 도구를 고른다
요즘 클로드 데스크톱 앱을 메인으로 쓰면서 느낀 것을 남겨 두려고 한다.
터미널을 좋아했던 이유
나는 터미널을 꽤 좋아하는 편이었다. 화면이 더 잘 읽혀서가 아니다. 할 수 있는 일의 자유도가 터미널이 훨씬 높았기 때문이다. GUI 는 보통 제약이 많아서 정해진 기능만 쓰게 된다. 그래서 늘 터미널 쪽을 골랐다.
AI 가 좋아진다고 내가 똑똑해지는 건 아니었다
너무 당연한 이야기인데, 요즘 이 말을 몸으로 느끼고 있다. 내가 똑똑해지고 있다고 착각하고 있었다.
모델이 좋아지고, 내가 다룰 수 있는 세션이 많아지고, 쓸 수 있는 토큰이 늘어나면 처리할 수 있는 일도 많아진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하루에 처리할 수 있는 양에 한계가 느껴지기 시작했다.
토큰이 모자라서가 아니었다. 일을 시켜 두면 결국 내가 확인하고, 컨펌하고, 고쳐 달라고 다시 요청해야 한다. 병목은 거기서 생겼다.
- 다 끝난 줄 알았는데 안 돼 있어서 다시 시킨다.
- 다 됐는데 결과물이 내가 생각한 것과 너무 다르다.
작업 개수가 늘수록 이런 병목은 풀리지 않는다. 하루만의 문제도 아니다. 사흘, 나흘, 일주일씩 쌓이면 생각보다 해소가 안 된다.
문제는 내 컨트롤 능력이었다
곰곰이 생각해 보니 결론은 내 컨트롤 능력 쪽으로 모였다.
방향을 구체적으로 잡아서 시키면 거의 모든 일은 AI 가 할 수 있다. 내가 AI 가 못 할 일을 준 적은 없다. 다만 결과가 내가 생각한 것과 다르게 나오는 게 문제다.
Fable 5 가 처음 나왔을 때 충격을 받았던 건, 머릿속에 그린 것이 그대로 구현되는 경험을 했기 때문이다. 오히려 그때부터 스펙 드리븐 같은 방식을 내려놓았다.
그런데 지금은 내가 생각한 결과가 그대로 나오지 않는다는 걸 자주 느낀다. 모델이 달라진 건지, 내 생각하는 방식이 바뀐 건지, 예전보다 더 넓은 숲을 보려고 해서 그런 건지는 잘 모르겠다. 분명한 건 그런 경우가 생각보다 많고, 그때마다 판단하는 과정이 버겁다는 점이다.
AI 피로
그렇게 피로가 쌓인다. 일을 내가 하는 게 아니라 AI 에게 시키는 건데도, 일을 시키기가 싫어지는 순간까지 생겼다. AI fatigue 라고 부를 만한 상태다.
이걸 풀어 보려고 오케스트레이션을 더 잘 짜는 쪽을 고민했다. 내 판단이 들어가는 세션을 제한적으로만 쓰는 구조 같은 것들이다.
결과가 아예 없지는 않았다. 하지만 생각만큼 드라마틱하게 풀리지 않았고, 그 시도에 시간을 너무 많이 썼다. 시간을 날렸다고 생각하니 거기서 또 스트레스를 받았다.
데스크톱 앱은 중간 과정을 가린다
그러다 우연히 클로드 데스크톱이 업데이트됐다는 걸 알고 테스트 삼아 켜 봤다. 써 보니 일을 보여 주는 방식이 터미널과 꽤 달랐다.
데스크톱 앱은 중간 과정을 거의 보여 주지 않는다. 작업 중이라는 상태만 띄우고 나머지는 대부분 접어 둔다. 일을 시켜 두고 한참 뒤에 와서 봐도 대화창에 내용이 잔뜩 쌓여 있지 않다.
터미널은 반대로 작업 상황이 거의 다 드러난다. 장점은 스쳐 지나가는 순간에도 일이 어떻게 진행되는지 이해할 수 있다는 것이다. 단점은 그게 나한테 상당한 피로로 다가온다는 점이다.
생산성이 아니라 피로도로 고른다
그래서 데스크톱 앱을 쓰게 됐다. 미리 말해 두면, 이걸 쓴다고 생산성이 좋아지거나 없던 능력이 생기는 건 절대 아니다.
중요한 건 내가 덜 피곤하다는 점이다. 같은 일을 시켜도 데스크톱 화면을 볼 때가 터미널에서 일할 때보다 덜 피곤하다.
요즘은 작업 방식을 데스크톱 쪽으로 옮기는 중이다. 그렇다고 터미널을 완전히 버릴 수는 없다. 데스크톱 앱에는 분명히 기능상 한계가 있다.
- 절반 이상의 일은 데스크톱 앱에서 처리할 수 있을 것 같다.
- 내가 복잡하게 오케스트레이션해야 하는 일은 여전히 터미널에서 한다.
더 심플하게
이렇게 나뉘고 나니 한 가지 생각이 들었다. 터미널 작업을 위해 데스크톱 앱을 따로 만들어 복잡하게 구축할 필요가 있을까.
오히려 더 심플하게 접근해야겠다. 무엇을 더 할 수 있느냐보다, 무엇이 나를 덜 지치게 하느냐로 도구를 고르는 쪽이 지금의 나에게 맞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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